상해에서 한국의 역사를 되새기다

상해 홍커우 공원의 윤봉길의사기념관(尹奉吉义士生平事迹陈列室)

윤봉길의사 사적전시관 앞 문패

 중국 경제의 중심, 상하이. 87년 전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 (루쉰공원) 에서 일왕의 생일과 상해 사변 전승을 기념하며 열린 이 날의 행사장에서는 큰 폭탄 폭발음이 들린다. 바로 한국인에게는 윤봉길 의사로 알려진 매헌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파견군 대장 등이 올라가 있는 단상에 던진 물병 모양 폭탄의 폭발음이었다.

전시관 내에 세워진  윤봉길의사와 거사 전의 배경을 간략히 새겨놓은 비석

 1919년 3월 1일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거점이 중국으로 옮겨지며 독립운동은 만주와 상해 일대에서 많이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중국으로 거점을 옮겨간 사람 중 한명이 바로 윤봉길이었다.

윤봉길의사의 생애와 거사 당일 사용했던 폭탄 모형 등이 전시되어있는 윤봉길 의사의 호로 이름 지어진 정자 형태의 전시관

윤봉길은 상하이로 거점을 옮긴 뒤 바로 이 곳,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거사에 참여하게 된다. 
 1932년 4월 29일 일본 침략군이 상해 홍커우공원에서 상해 사변 전승과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열었던 기념식에 하객으로 가장하고 행사에 참석한 윤봉길 의사는 당시 단상의 일본 침략군이게 던질 물병 모양의 폭탄과 거사를 마친 후 자결 용으로 쓸 도시락 폭탄 총 2개의 폭탄을 지닌 채 참석하였다.

거사 당일 사용된 폭탄과 윤봉길 의사의 도장, 거사 직전 김구 선생의 시계와 맞바꾼 윤의사의 시계가 전시되어있는 모습이다

단상으로 던진 물병 모양의 폭탄으로 일본군 대장과 일본 거류민단장은 즉사하였으며, 그 외에 사단장과 중장을 비롯한 많은 일본군에 상해를 입혔다.
 거사 직후 윤봉길 의사는 일본군에 의해 진압 및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 일제는 윤 의사를 혹독하게 조사 및 심문한 후 1932년 5월 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하였다. 같은 해 11월, 윤 의사는 일제의 삼엄한 경비 속에 일본 오사카 형무소로 이송, 수감 되었다가 12월 19일 가나자와에서 순국하였다. 이때 윤봉길 의사의 나이 겨우 25세였다. 그는 순국 직전 자신의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편지를 남겼는데,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전시관 내에 있는 윤봉길의사의 흉상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 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생략)”
 홍커우 공원 거사로 한국인의 자주의식을 널리 알린 윤봉길 의사는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았다. 윤봉길 의사의 죽음은 인류의 양심과 평화, 정의의 실현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려는 거룩한 순국이었다.


취재 오수미

상하이 매헌 윤봉길 의사 생애 사적 전시관. / 20여 평의 정자 형태 2층 목조건물로, 윤봉길 의사가 1932년 일본군 요인을 폭살한 홍커우공원 의거를 기념해 1994년 상하이 홍커우구 인민정부와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건립하였다.


야외 ; 윤봉길의사 생애 전시
1층; 추모 흉상, 의거 성과 및 영향, 조국 광복에 관련된 전시물

오시는 길
주소 루쉰공원 (구 홍커우공원)2층; 윤봉길의사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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